[이슈프리즘] 한경협, 오너경제인協서 탈피할 때

입력 2024-01-02 18:03   수정 2024-01-03 00:46

한국경제인협회 출범 100일이 지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로 존립 위기에 몰렸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후신이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8월 한경협 회장에 올랐다. 55년 만에 기관명을 바꾸고 정경유착을 차단하기 위해 윤리위원회도 신설했다.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인 ‘갓생한끼’, ‘청년 자문단’도 운영 중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비해 한경협의 지위는 조금 나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국빈 방문 때 경제사절단 구성을 주도했다. 한동안 대한상공회의소가 맡았던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옛 전경련 위상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친다. 류 회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경협을 글로벌 싱크탱크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한경협에 기대하는 게 과연 CSIS 같은 싱크탱크일지는 의문이다. 설립 취지를 담은 ‘정관 1조’는 변함이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한다’는 조항이다. 기업은 한경협이 정부 정책 수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원한다. 기업 목소리를 대변하는 ‘재계 맏형’ 역할이다. 이를 통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길 바란다.

4대 그룹도 7년 만에 회원사로 복귀했지만 회비는 아직 내지 않고 있다. 이들 그룹이 외부 싱크탱크 보고서 몇 장을 보려고 수백억원의 회비를 내려는 건 아닐 것이다. 이미 자체 연구소도 있고 미국 워싱턴엔 거대 대관(對官) 조직까지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통’ 류 회장도 일본 게이단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게이단렌은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폭넓게 관여한다. 기업 요구를 얼마나 정책에 반영했는지를 놓고 평가받는다. 의원들의 정책 평가서를 기초로 각 정당에 공개적으로 정치 후원금도 낸다.

회장단 면면도 한경협과 크게 다르다. 한경협은 류 회장을 포함한 12명 회장단 중 11명이 오너다. 나머지 한 명은 류 회장이 임명한 외교 공무원 출신 김창범 부회장이다. 오너만 회장단에 가능하다는 규정은 없지만 관례상 그렇게 해오고 있다. 정보기술(IT)·금융권 인사는 전무하다.

반면 게이단렌은 19명의 부회장단 대부분이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특히 미즈호파이낸셜의 사토 야스히로, 일본전기의 엔노 노부히로는 각사의 고문이다. 쓰가 가스히로 파나소닉홀딩스 회장 등 4명은 대표에서 물러나 사내이사로만 남아 있다. 1998년 도요다 쇼이치로 도요타 회장 이후 게이단렌 회장도 전문경영인이 맡고 있다. 그래서 당시 아베 신조 총리 면전에서 “무데뽀 금융완화”라고 비판한 회장(요네쿠라 히로마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이단렌에 오너 회장이 끊어진 것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오너 일가 지분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창업자 가문 경영인이 적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다들 아는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 니토리 아키오 니토리홀딩스 회장, 나가모리 시게노부 니덱 회장도 회장단 명단에 들어 있지 않다.

한경협도 현재 11명인 부회장단을 최대 25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게이단렌처럼 여성도, 전문경영인도 부회장에 임명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민관합동위원장 내정설까지 돈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 현재의 미래에셋그룹을 만들고 26년 만에 고문으로 물러난 최현만 전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부회장으로 어떨까. 이제 ‘오너경제인협회’에서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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